컬쳐
테니스 전설, 비에른 보리
은퇴 후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이케아, 아바, 잉그리드 버그만과 함께 스웨덴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남자. 그는 언제나 턱수염을 기른 강인한 얼굴로 금발 장발을 휘날리며 코트 위를 종횡무진 오갔습니다. 그가 입은 휠라 스트라이프 반팔 셔츠와 헤어 밴드는 남녀노소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죠.
코트 위의 냉철한 승부사, 1970년대의 상징, 테니스웨어의 신기원을 연 스포츠 패션 아이콘. 그는 Mr.Ice, ‘비에른 보리(Bjorn Borg)’입니다.
#1. 최연소 기록의 사나이
스웨덴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부터 주목을 받으며 성장한 비에른 보리는 흔히 말하는 ‘될성부른 떡잎’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1973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보리는 이듬해 이탈리아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신성의 등장을 알렸죠. 하지만 그것은 전설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2주 후, 그는 4대 그랜드 슬램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에서 최연소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유소년기부터 엄청난 정신력과 집중력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훈련에 매진한 그의 최연소 기록 행진은 1976년 윔블던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며 화룡점정을 이뤘습니다.
#2. 냉철한 챔피언
북유럽 스웨덴 출신의 좀처럼 실수를 범하지 않는 냉철한 플레이어. 비에른 보리를 대표하는 ‘Mr.Ice(미스터 아이스)’란 애칭에는 독보적인 캐릭터가 그대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코트 위에서는 라파엘 나달처럼 끈질긴 베이스라이너였던 비에른 보리는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 바탕으로 상대방을 공략하곤 했습니다. 동시에 철저한 분석에 바탕을 둔 노련한 경기 운영 전략을 바탕으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죠.
26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실질적인 은퇴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11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했고, 윔블던에서 다섯 번 연속으로 우승하였으며, 두 번 이상 같은 해에 프랑스 오픈과 윔블던에서 연이어 우승하는 등 전설적인 기록들을 남겼습니다.
#3. 시대의 아이콘
비에른 보리가 두각을 드러낸 1970-80년대는 변화의 바람이 불던 시기였습니다. 본격적인 스포츠 TV 중계가 시작되면서 귀족적인 스포츠의 대명사였던 테니스가 대중 스포츠로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이죠. 모든 대중문화가 그러하듯 이 시기 테니스는 종목을 대표할 아이콘을 필요로 했고, 비에른 보리는 그런 시대적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선수였습니다.
당시만 해도 테니스웨어는 폴로 셔츠와 플란넬 재질의 팬츠로 대표되는 클래식한 스타일이 주를 이뤘습니다. 반면 비에른 보리는 언제나 휠라의 산뜻한 피케 소재 반팔 셔츠를 입고 코트에 나섰고, 기능성과 스타일을 모두 잡은 독보적인 룩을 선보였습니다. 여기에 더해 그가 착용한 휠라의 아이코닉한 스트라이프 디자인 셔츠와 헤어밴드는 단순한 경기복을 넘어 당대 가장 트렌디한 패션 아이템이 되었습니다. 코트를 누비는 그의 모습은 연일 수많은 신문과 잡지의 표지에 대서특필되었습니다.
#4. 선구자의 유산
현대 테니스에서 ‘톱스핀’은 플레이스타일을 막론하고 테니스 스트로크의 교과서로 여겨지고 있지만, 원래부터 빈번하게 활용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톱스핀의 위상을 플랫샷보다도 높인 것 역시 비에른 보리였습니다. 보리 이전에도 톱스핀을 사용한 선수들은 꽤 많았으나, 누구도 그만큼 톱스핀을 위협적으로 활용하진 못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웠던 나무 라켓의 시대에 말입니다.
아울러 그는 불같은 승부욕을 절대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고, 놀라운 수준의 차분함을 유지하며 빼어난 성적을 거뒀습니다. 덕분에 테니스계 전반에서 선수 개개인의 멘탈리티 관리와 훈련을 주목하기 시작했죠. 그의 빼어난 스킬과 프로페셔널한 자세는 이후 세대 테니스 선수들에게도 커다란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