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나로부터 시작되는 판타지

오피스 겸 스튜디오의 절반 넘게 온갖 재료와 비품이 한가득 쌓여 있다. 형형색색 다채로운 질감과 색감의 소재와 물품으로부터 그녀는 판타지적이면서도 동화적인 기묘한 상상의 세계를 자아낸다.
스스로에 대한 애정과 탐구로부터 비롯되는 서수현 작가의 창작은 해를 거듭할수록 한계를 모르고 확장되는 것만 같다

#1. 도전과 치열함

Q. 올해도 장르 불문 쉴 틈 없이 달려오셨습니다. 작가님의 2024년을 한 편의 기사로 정리한다면 어떤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요?

제가 올해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20대를 돌아보게 되는데, 정말 겁 없이 많은 것에 도전하고 치열하게 살았던 기간인 것 같아요.
그런 시기의 마지막 장에 와있다 보니 아무래도 ‘도전과 치열함’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겠네요.


Q. 도전과 치열함은 열정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치밀한 계획을 통해 얻어지기도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떤 타입에 가까우신가요?

저는 원래 계획적인 성향인데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이 뜻대로 스케줄링 되는 경우가 잘 없고, 변수가 많기 때문인지 점점 계획을 안 세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년에도 큰 목표는 있지만, 세분화한 목표를 세우기보다는 닥친 상황에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Q. 그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창작물이 있을까요?

작가로서는 다작하는 스타일인데 올해는 기존에 비해 작업량이 많이 적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에는 일단 작가로서 셀 수 없이 많은 귀한 프로젝트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반면 아트 디렉터로서는 굉장히 다작했기 때문인지 온 힘을 다했다는 감각만 남아 있고 어떤 하나의 프로젝트가 떠오르진 않습니다.

#2. 가변적, 포용적

Q. 작가님의 작품 활동은 정말 우연한 계기로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2021년 초에는 코로나가 정말 심해서 졸업 전시를 오프라인으로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개인적으로 그게 너무 아쉬워서 김리아갤러리 작품 공모에 응모했고 당선되어 첫 전시를 열게 되었죠.
이후 첫 전시를 좋게 봐주신 분들 덕분에 다른 전시 기회가 계속 이어졌고요. 주목해 주셨을 때 더 열심히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작가 활동에 임해왔습니다.


Q. 섬유를 기반으로 정말 다양한 작품을 만들고 계신데요. 재료 관점에서 섬유는 어떤 특징과 매력을 지니고 있나요?

저는 섬유가 굉장히 강한 재료라고 생각해요. 사람에 비유하자면 그릇이 크고 포용력이 넓다고 할까요?
섬유 원단은 3D, 2D 등의 형태로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고, 강한 물성을 지닌 소재를 감쌀 수도 있고, 솜을 넣으면 특정 형태를 만들기도 용이하죠. 저는 그런 가변적인 특성이 흥미로웠어요.
비교적 경직되어 있는 다른 소재에 비해 질감도 다양하고 자유분방하게 활용할 수 있는 매력 때문에 지금도 섬유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Q.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작품은 동화적이기도, 지극히 판타지적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통해 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신가요?

보통 작품을 감상할 때 관객들은 “저 사람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해서 이런 걸 만들었을까”라며 마치 먼 사람처럼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저는 사람 사는 것과 생각하는 건 누구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작품의 비주얼과 달리 메시지 측면에서는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요소들을 녹여내는 편이에요.
그냥 제가 좋아서, 재밌어서, 표현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어요.


Q. 다른 한편으로는 수우 秀優의 아트 디렉터로도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어요. 아트 디렉터로서의 활동은 작품 창작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가요?

작가는 내면에서 홀로 메시지를 끌어 올려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로울 수밖에 없죠.
반면 아트 디렉터는 많게는 100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노력하고 힘쓰기 때문에 비교적 마음이 든든한 측면이 있어요.
물론 현장에서의 돌발 상황은 아트 디렉터 업무를 볼 때 훨씬 잦지만, 밖으로 에너지 쏟는 것과 안으로 에너지를 쓴다는 각각의 성격이 교차되면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게 된 것 같아요.

#3. Myself

Q. 창작 과정에서 모티브는 어떻게 찾고 계신가요?

대부분의 작업은 일상의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최근 ‘덕질’을 주제로 하는 전시에 참여했는데, 각자가 몰입하는 대상을 *다키마쿠라로 만드는 작업을 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덕질하는 대상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는데 전혀 없더라고요. 어렸을 때 연예인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 없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도 문외한이에요.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몰입할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저는 그냥 저 자신을 덕질하더라고요. 의식주를 챙기고, 스스로를 살피고, 작품을 생각하거나 만드는 일상의 몰입으로부터 재미를 느끼는 거죠.
(* 다키마쿠라 : 일본에서 유래된 긴 형태의 베개로, 서브컬처씬에서 굿즈로 인기가 많음)


Q. 흥미롭네요. 덕질의 소재야 다양할 수 있으니 그것도 분명 일종의 덕질이죠.

일기를 쓰거나 사진을 찍는 등 제가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는 것이 모두 ‘덕질’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으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부터 그 사람의 마음까지도 알고 싶어 하잖아요.
그런 감정을 스스로를 향해 느낀다는 측면에서 일상에 대한 몰입이 높은 사람이구나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어요. 대부분의 작업들도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고요.


Q. 그렇다면 작업 외적으로 쉬는 날은 어떻게 보내세요?

두 가지 일을 하다 보니 보통은 바쁘게 보내지만, 대화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친구들 또는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에너지를 얻고 있어요. 목은 조금 아플 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충만해지는 기분이 들고요.
무엇보다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생각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제 생각이 확장되는 그 과정이 재밌어요. 그럴 에너지조차 없을 때는 운동을 하고 집을 치워요. 저는 잘 어지르기도 하지만, 잘 치우기도 하거든요.
한번 집을 정리하는 날에는 베개나 이불까지 싹 바꾼 다음 샤워하고 소파에 앉아 깨끗한 방을 멍하니 보고 있기도 해요. 그런 여유 있는 날의 루틴을 좋아해요.

Q. 매년 꾸준하게 창작 반경을 넓혀오셨는데요. 내년에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일단은 3개 정도의 브랜드와 협업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어요. 정확히 3개인 게 웃기죠? (웃음) 4개월에 한 번 정도는 협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는 그런 바람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한창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돈을 벌자는 저 나름의 목표도 세워뒀고요. 나아가서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원래 나이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지만, 마침 30대를 앞두고 있기도 하니까요.


[서수현] https://www.instagram.com/suhyunarchive
[수우 秀優] https://www.instagram.com/soowoo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