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테니스 헤리티지의 대명사, 그랜드슬램
시간은 쌓일수록 전통과 서사, 그리고 드라마를 남깁니다. 이는 테니스에서도 마찬가지죠. 국제테니스연맹 산하 수많은 대회 가운데 이른바 근본을 인정받은 4개 주요 대회는 ‘그랜드 슬램(Grand Slam Tournaments)’으로 불리며 매년 테니스 마니아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습니다.
알고 보면 더욱 흥미진진한 그랜드슬램 이야기, 그중에서도 각 대회 고유의 개성과 전통을 상징하는 키워드와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호주 오픈 (Australian Open, AO)
한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그랜드 슬램입니다. 1월에 개최되는 대회이지만, 남반구 특성상 다른 그랜드 슬램 오픈과 마찬가지로 무더운 날씨 속에 경기가 진행되고, 호주의 여름 무더위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온갖 이변이 속출해 왔습니다.
Happy Slam
호주 오픈이 ‘Happy Slam’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선수 대부분이 휴식기 직후 최고의 컨디션으로 참여하는 대회라는 점, 멜버른 파크의 최신식 시설에 대한 선수들의 선호도가 높다는 점 등이 그것이죠. Happy Slam이란 애칭을 처음 거론한 건 무려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인데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언제나 설레는 마음으로 호주 오픈을 준비했다고 밝혔습니다.
AO Ballpark
대회 기간, 멜버른 파크는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테마파크로 탈바꿈합니다. 대형 슬라이드, 워터파크 등의 놀이 시설은 물론 어린이들이 테니스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미니 테니스 코트, 부모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푸드 스탠드와 좌석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최고의 가족 친화적 그랜드 슬램 호주 오픈을 완성합니다.
프랑스 오픈 (Roland-Garros)
클레이 코트의 계절로 통하는 봄 시즌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회입니다. 공의 바운드가 크고 스핀이 많이 걸리는 클레이 코트 특성상 수비에 강점이 있는 선수들이 항상 좋은 성적을 내온 오픈이며, 이런 특성에 힘입어 2010년대에는 라파엘 나달이 롤랑 가로스의 화신으로 자리매김했죠.
Benny Berthet
베니 베르테는 롤랑가로스 개막 직전 열리는 이벤트 매치로 대회 프리뷰의 역할을 겸하는 자선 경기입니다. 매년 다수의 탑 랭커들이 좋은 취지에 호응해 참가하고 있으며, 수익금 전액을 지역 자선 단체에 기부하는 등 선행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Eiffel Tower
우승자는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테니스 팬들 사이에서는 그해 롤랑가로스의 모든 서사와 감동의 순간을 한 장에 담아내는 아이코닉한 이미지로 통하고 있죠.
윔블던 선수권 대회(The Championships, Wimbledon)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토너먼트이자 명실공히 4대 그랜드슬램 가운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입니다. 1877년 첫 대회가 열린 이래로 단 9번을 제외하고 매년 개최되어 왔는데요. 그중 8번은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개최 취소였고, 나머지 1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개최 취소였어요.
White Dress Code
모든 선수들은 흰색 복장을 착용해야만 출전할 수 있습니다. 윔블던 공식 홈페이지에 명시된 복장-장비 규정은 무려 2,000자 분량에 달하며, 심지어 오프화이트나 크림색 등 백색 계열의 다른 색상까지 일체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해요. 겉으로 보이는 상하의뿐만 아니라 양말, 테니스화, 각종 밴드, 속바지, 속옷까지도 제한하는데, 주최 측에서는 19세기 이래로 이어 내려온 윔블던의 전통과 품격을 보여줄 수 있는 색상이 바로 흰색이기 때문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요.
Strawberries and Cream
딸기&크림 디저트는 윔블던의 상징과도 같은 핑거푸드로 대회 초창기였던 19세기 당시에는 고급 디저트로 손님을 정중하게 대접한다는 의미가 강했다고 해요. 지금도 윔블던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며, 여기에 샴페인을 곁들여 즐기는 건 테니스 마니아 사이에서 로망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합니다.
US오픈(The United States Open Tennis Championships)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 뉴욕에서 개최되는 그랜드슬램의 대미를 장식하는 대회입니다. 메인 코트인 아서 애시 스타디움은 수용 인원 23,771명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테니스 전용 코트이며 훌륭한 조명 설비 덕분에 이 대회에서는 수없이 많은 야간 명승부가 탄생했습니다.
Fan Week
US 오픈 일주일 전, 대회가 열리는 USTA 빌리 진 킹 국립 테니스 센터 일원에서는 테니스 팬을 위한 행사인 팬 위크가 열립니다. 팬 위크 기간 팬들은 예선 경기나 선수들의 오픈 트레이닝 세션, 레전드 테니스 스타들의 이벤트 매치 등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이외에도 콘서트와 파티 등 다채로운 이벤트가 펼쳐집니다.
Sampras vs Agassi
1990년대~2000년대를 호령한 두 라이벌, 피트 샘프러스와 안드레 애거시는 2001년 US 오픈 8강전에서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연출했어요. 4세트 내내 타이 브레이크가 이어진 혈투에서 샘프러스는 가까스로 승리했죠. 애거시의 마지막 포핸드가 네트에 걸리는 순간,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명승부를 펼친 두 선수를 위해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